김희연 변호사
얼마 전 인하우스 마케터로 계신 분이 분쟁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상담을 의뢰한 마케터에 따르면 A업체와 마케팅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A업체의 담당 매니저는 입금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업체 측으로 질문을 남겨도 여러시간 후 카톡 답변만 주는 등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계약 후 한 달 동안 인스타, 페북에 광고도 집행되지 않았고 실행에 대해서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였습니다. 계약 체결 후 한 달이 지나가는데도 고객 DB조차 추출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화가 난 마케터가 계약 해지와 환불 요청을 하였습니다.
A업체는 한 달 뒤에 환불하겠다는 통보를 한 후 연락을 바로 차단하였습니다. A업체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는 마케터는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케팅 전문 커뮤니티 게시판에 ‘A 업체가 약속한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A업체는 바로 해당 커뮤니티에 요청하여 글을 삭제하고, 오히려 위 마케터를 '허위사실유포 및 업무방해'로 고소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 사실을 공표하는 경우에는 업무방해죄가 되지 않는다
일단 A업체가 문제 삼고 있는 범죄 중 업무방해죄는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형법에서는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기타 위계 또는 위력’의 방법을 사용하여 업무를 방해한 때에 한하여 업무방해죄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 마케터가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면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므로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없습니다.
■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렇다면 A업체가 문제 삼고 있는 죄 중 ‘허위사실유포’는 어떨까요?
이 경우에는 ‘허위사실유포’죄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대신 ‘명예훼손’ 죄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허위 사실 유포라면 위 마케터가 하는 주장이 허위 사실이라는 것을 A업체가 입증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사안에 비추어 보면 A업체가 계약의 이행을 지연한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점을 지적한 것은 ‘사실의 적시’가 될 뿐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형법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경우 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이를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즉, 도둑을 가리켜 ‘도둑이다’라고 해도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 마케터가 진실을 적시하였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미투’ 운동 이후에 최근까지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죄의 폐지론이 적잖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은 언론·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측면이 있어 위헌의 여지가 있는데, 실제로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이 여러번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대법원의 양형기준은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죄에 관한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고,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 및 출판물 등 정보통신망 이용 명예훼손에 한하여 이를 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국회에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기 위한 법률안이 여러 건 발의되어 있는데, 언제라도 법안이 통과되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죄가 처벌되고 있으므로, 위 마케터의 행위가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죄에 해당된다면 처벌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 경우는 처벌 수위가 높지 않고 대부분 벌금형으로 처벌됩니다.
■ 인터넷 사이트 등에 올린 글은 ‘비방의 목적’이 없다면 죄가 되지 않는다
고소 통보를 받은 마케터는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린 경우이기 때문에 ‘형법상의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이 아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됩니다. 이 경우 처벌의 정도의 정도가 더 무거워지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정보통신망 등에 의한 명예훼손이 되기 위해서는 1)비방할 목적을 갖고 2)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3)사실을 드러내어 4)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위 마케터의 사안은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비방의 목적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산후조리원 소비자가 자신이 겪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사업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인터넷상에 게시한 행위에 관하여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다는 판결을 한 바가 있습니다.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피고인이 인터넷 카페나 자신의 블로그 등에 직접 겪은 불편사항을 후기 형태로 게시하였고, 산후조리원 측은 이 글을 명예 훼손이라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한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판례는 ▲피고인이 산후조리원을 실제 이용하면서 겪은 일과 이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담은 이용 후기인 점 ▲'甲의 막장 대응’과 같이 다소 과장된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인터넷 게시글에 적시된 주요 내용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점 ▲피고인이 게시한 글의 공표 대상이 인터넷 카페 회원이나 산후조리원 정보를 검색하는 인터넷 사용자에 한정되고, 불특정 다수 인터넷 사용자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참작하였습니다.
법원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피고인이 적시한 사실을 산후조리원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 하는 임산부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 및 의견 제공이라는 '공공의 이익'으로 봤습니다. 피고인의 주요한 동기나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산후조리원 이용대금 환불과 같은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산후조리원을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 2012. 11. 29 선고 2012도10392 판결 참조).
표현에 다소간 과장됨이 있더라도 자신이 겪은 일을 후기 형태로 올리면서 정보 및 의견 제공에 불과한 것이라면 비방의 목적이 없으므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이와 다소 배치되는 듯한 판례도 있습니다.
커뮤니티 사이트 ‘보배드림’에 인테리어 계약과정에서의 불만과 업체명을 게시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보배드림’ 카페가 인테리어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자동차쇼핑몰 및 중고물품 거래 관련 인터넷 사이트인 점 ▲게시한 글에는 피해자에 대한 비판 뿐만 아니라 '자식들한테 아버지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려야 합니다', '악질 사기범', '먹튀' 등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점 ▲인테리어 계약의 진행 경과나 피해자 회사의 상호 외에도 피해자 차량의 종류와 번호를 알 수 있는 차량 사진과 피해자의 이름, 회사 주소, 회사 전화번호 및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기재된 명함 사진을 첨부하여 글을 게시한 점 등을 고려하여, 피고인이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이 경우에는 벌금 70만 원이 선고되었는데 이를 보면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매우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주지방법원 2017. 6. 15 선고 2017노40 판결)
이처럼 판례의 결론이 다른 이유는 양 사건 간의 사실관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판례는 후기 작성에 있어서 ▲불특정 다수에게 무분별 노출되는 게시판에 작성한 점 ▲피해자의 불필요한 정보(차량의 종류와 번호 등)까지 기재한 점이 고려되어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 형사상 유죄가 되면, 민사상 손해배상을 할 수도 있다
형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이후에 피해자가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제기되어 추가적으로 금전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의 경우, 위와 같이 형량이 경미하다 보니 그 손해배상금액도 높지 않습니다.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변호사 선임료나 법무사 수수료에 비해 승소로 인한 경제적 이익(손해배상액)이 적어서 오히려 손해가 되기 때문에 민사 소송까지 제기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즉, A업체가 위 마케터를 형사고소한다고 하더라도 비방의 목적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 되거나, 처벌을 받더라고 몇 십만 원의 벌금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고객의 환불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 형사 고소를 하겠다고 강력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 실제로 형사고소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형사고소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합의를 하여 고소를 취하할 수도 있고, 합의가 잘 안 되더라도 처벌의 수위가 낮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처벌은 현실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막상 고소를 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덜컥 겁이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당한 요구를 하고 피해를 알리는 과정에서 상대방으로부터 고소를 하겠다는 협박을 받게 되었다면, 부디 설명해드린 내용을 기억하고 위축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물론 명예훼손도 나쁜 마음을 먹고, 허위의 사실로 피해자에게 큰 피해를 입히면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당한 권리 행사 과정에서 사소하게 명예훼손성 발언을 하게 됐다고 무조건 무겁게 처벌되는 것은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내용을 잘 숙지하셔서, 난감한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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